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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채로 오래 머무는 연습 — "모름"을 불편해하지 않고,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by 김누닝 2026. 6. 15.

모른다는 느낌은 불편하다.

단순한 감정적 불편함이 아니다. 인지과학적으로,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위협과 동일하게 처리한다. 답을 모르는 상태는 뇌의 편도체를 자극하고, 우리는 그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즉각적인 답을 찾아 나선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거나, 아는 척하거나, "그냥 그런 거야"라고 넘겨버리거나. 우리가 모름을 처리하는 방식은 대부분 그것을 최대한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계속 이야기해온 것처럼, 빠르게 해소된 모름은 깊은 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진짜 배움은 종종 모름과 함께 오래 머무는 것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모름을 견디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의 문제다. 불확실성을 품고 사는 능력은 근육처럼, 쓰지 않으면 약해지고 꾸준히 써야 강해진다.

 

모르는 채로 오래 머무는 연습 — "모름"을 불편해하지 않고,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모르는 채로 오래 머무는 연습 — "모름"을 불편해하지 않고,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이 글은 모르는 채로 오래 머무는 연습.  "모름"을 불편해하지 않고,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그 근육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모름을 견디지 못하는 진짜 이유

모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그 자연스러움의 뿌리를 이해해야, 그것을 의도적으로 다룰 수 있다.

심리학자 아리에 크루글란스키(Arie Kruglanski)는 1990년대에 '인식적 종결 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것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빨리 끝내고 명확한 답에 도달하려는 심리적 동력이다. 이 욕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 그리고 스트레스 상황, 시간 압박, 피로한 상태에서 더 강하게 작동한다.

현대인의 삶은 이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환경, 정보 과잉으로 인한 인지적 피로, 성과와 효율을 강조하는 문화. 이 모든 것이 '빨리 결론 내리기'를 강요한다. 그 결과 우리는 모름을 만나는 즉시 제거하려는 반사적 습관을 갖게 됐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 우리가 받아온 교육은 대부분 정답을 빠르게 찾는 훈련이었다. 시험에는 정해진 답이 있고, 그 답을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찾느냐가 능력의 척도였다. 모른다고 손을 드는 것은 칭찬받는 행동이 아니었다. 오래 생각하는 것은 '이해가 느린 것'으로 해석됐다. 수십 년의 교육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것은 결국 '모름은 빨리 없애야 할 결함'이라는 무의식적 믿음이다.

하지만 철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은 오히려 모름을 품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을 자신의 지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하지만 자신은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모름에 대한 자각이 곧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모름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려면, 먼저 그것이 결함이 아니라 탐구의 문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른다는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미발견의 공간이야말로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다.


의문을 품은 채 사는 법 — 질문을 닫지 않는 연습

모름을 견디는 첫 번째 실천은 질문을 너무 빨리 닫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질문이 생기면 답을 찾고, 답을 찾으면 질문을 닫는다. 하지만 깊은 질문들은 하나의 답으로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답을 찾은 뒤에도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연쇄를 따라가는 것이 깊은 배움이다.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1817년 형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이라는 개념을 처음 썼다. 그것은 "불확실성, 신비, 의심 속에 있으면서도 짜증스럽게 사실이나 이성을 추구하지 않는 능력"이다. 키츠는 이것이 위대한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핵심 역량이라고 보았다. 답이 없는 상태를 견디고, 오히려 그 상태에서 창의적으로 탐구하는 힘.

이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나의 질문을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열어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왜 어떤 사람들은 같은 실패를 겪어도 성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너질까?"라는 질문이 생겼다고 하자. 빠른 학습자는 즉시 검색해서 '회복탄력성'에 관한 글을 읽고, 몇 가지 요인을 정리한 뒤 질문을 닫는다. 느린 학습자는 이 질문을 며칠 동안 품고 다닌다. 출퇴근 길에 사람들을 보면서, 뉴스를 읽다가, 친구와 대화하다가 이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통찰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면, 질문 노트를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답이 아닌 질문을 적는 노트다. 오늘 생긴 의문,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왠지 더 파고들고 싶은 주제를 적어둔다. 그리고 그 질문들을 하루에 한 번씩 다시 읽는다. 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그 질문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질문을 오래 품다 보면 의외의 순간에 통찰이 온다는 점이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중력의 개념을 떠올린 것처럼,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들어가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것처럼.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랫동안 문제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뇌의 무의식이 계속 그 문제를 처리하다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부화 효과(Incubation Effect)'라고 부른다.

질문을 빨리 닫지 않는 것. 의문을 불편함이 아닌 동반자로 대하는 것. 이것이 모름과 함께 사는 첫 번째 연습이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근육 만들기 — 작은 불편함에서 시작하는 훈련

모름을 견디는 것이 훈련이라면, 훈련에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거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살려고 하면 오히려 불안만 커진다. 작은 불확실성을 의도적으로 경험하면서, 그 근육을 점진적으로 키우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첫 번째 훈련은 검색을 미루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즉시 검색하는 대신 30분, 혹은 하루를 그 모름 속에 머물러 보는 것이다. "저 단어의 정확한 뜻이 뭐였지?" "이 사건이 정확히 언제였지?" 이런 작은 모름들을 즉각 해소하지 않고,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해본다. 처음엔 불편하지만, 반복하면 모름이 주는 긴장이 점점 익숙해진다.

두 번째 훈련은 책을 읽을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그냥 넘어가 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을 만나면 멈추고, 다시 읽고, 검색하고, 완전히 해결하고 나서야 다음으로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뒷부분을 읽다 보면 앞의 모호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인 맥락이 부분의 의미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반복하면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서서히 생긴다.

세 번째이자 가장 깊은 훈련은 자신의 핵심적인 믿음에 "정말?"이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아무 의심 없이 믿어온 것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좋은 대학이 좋은 미래를 보장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와 같은 믿음들. 이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불편하다. 삶의 안정적인 토대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성장의 신호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을 때,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은 그 질문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불편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의심하는 것은 언제나 불쾌하다. 하지만 그 불쾌함을 통과해야 더 넓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의 불편함'과 '더 깊은 이해라는 미래의 가치'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훈련이다. 즉각적인 해소 대신, 오래 품는 것. 이것이 모든 느린 배움의 실천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마치며

모른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빠른 배움의 세계에서 모름은 빨리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다. 하지만 느린 배움의 세계에서 모름은 탐구의 입구다. 그 입구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잠시 멈추어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인식적 종결 욕구는 줄일 수 있다. 질문을 닫지 않는 연습, 검색을 미루는 훈련, 이해되지 않는 것과 함께 사는 감각. 이것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모름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당신의 배움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다음 글에서는 이 모든 태도를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방법, 노트 한 권을 1년 동안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글은 [느리게 배우기] 시리즈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